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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UI/UX(웹퍼블리셔)&영상편집(유튜브,에펙,블렌더3D) 양성과정-혼합
(산대특)ICT를 활용한 융복합 광고콘텐츠제작(UI/UX,모션그래픽(유튜브영상)_특례
문화컨텐츠산업 육성을 위한 서비스플랫폼 제작 및 마케팅 전문 인력 양성과정
모션그래픽(프리미어(PREMIERE),에펙(AFTER EFFECTS) 유튜브영상편집
유튜브영상편집(프리미어,에펙,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모션그래픽
모션그래픽 유튜브영상편집(프리미어,에펙,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
영어 실력이 ‘젬병’이었던 도미 초기, 배가 고파 찾아간 햄버거 가게에서 20불짜리 지폐를 내밀며 “I’m very hungry”를 수줍게 말했던 한국 청년은, 현재 ‘Director of creative designer’라는 직함을 달고 뉴욕 맨하튼 거리를 당당히 활보하고 있다. 가끔은 인사동 부산식당의 생태찌개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에디터 | 이상현(shlee@jungle.co.kr)
공모전 수상이나 특별한 경력도 없이 그저 무던하게 대학(인덕대학 시각디자인과)을 다녔다는 장호석. 그의 뉴욕 입성은 스스로도 ‘뜻밖’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어느새 여느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살벌한 취업 전장에 서야 했던 졸업반 시절, 지인의 권유로 얼렁뚱땅 두 달간 준비를 마친 뒤 훌훌 국경을 넘게 됐다는 것. 한국 땅은 단 한번도 떠나본 적 없으며 영어 실력도 ‘젬병’이었던 서울 촌놈에게 당시의 미국행이란, “인생 계획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이따금씩 막연히 꿈 꿔보는 춘몽과도 같은 것”이었다. 모두들 발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미국 비자를 손에 쥐고서도, 주머니에는 단돈 100만원이 든 채로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조차도,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스물 여섯 청년이 기회의 땅 미국에 발을 디뎌 가장 처음 맡은 일은, 골프 공을 포장하는 소일거리였다. 아마도 그때 장호석은 도시 뉴욕의 냉험한 실체를 피부로 체감했으리라. “디자인 실무를 바로 맡기에는 영어 실력이나 디자인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일주일 만에 마치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회사를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을 찾아 떠나온 뉴욕 땅에서, 정작 디자인과 떠나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게 무척이나 싫고 힘들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뉴욕 땅에 당도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기 위해 맨땅에 헤딩하듯 직접 부딪쳐야 했다. “무작정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들고 뉴욕의 한인신문 사에 찾아갔다. 다행히 그곳에서 광고 디자인 작업을 맡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미 그때 영양가 없는 자존심, 막연한 기대와 동경은 버렸다. 이곳도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굶어야 하는 냉정한 곳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활고에 좌지우지 되는 꿈이라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호석은 다시 한번 맨땅에 헤딩하듯 도전장을 내밀었다. 재취업에 도전했고, 결국 지금 근무하는 ‘윙키 아일랜드(Winki Island)’에 정착할 수 있었다.